2013년 7월 18일 목요일

미야자키 하야오 "헌법을 바꾸는건 당치도 않다."

헌법개정 특집

자민당에 정권이 돌아가 반년 이상이 지났습니다.
총리 취임 당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헌법개정에 의욕을 불태우고있는 아베 총리는 차근차근 그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자민당 자체가 창당 이후 '헌법개정'을 당의 사명으로 내걸고 있기에, 이것은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하지만 자민당이 내놓고있는 새 헌법의 초안을, 또 아베 총리가 그리고 있는 헌법 96조 개정의 흐름, 그리고 본론이 되는 헌법9조 개정을 얼만큼의 사람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무관심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미디어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향후의 일본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이 되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 주장을 명확하게 하는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제9조

제2장 전쟁의 포기

제9조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의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이를 영구히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위루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은 이를 보전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헌법을 바꾸는 것은 당치도 않다.


조금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군국소년이 되어있었다.


나는 1941년생입니다만 일본국 헌법이 만들어졌을때의 기억은 없군요.(편집부 주:일본국 헌법공포는 1964년) 그것보다도, 어릴적에는 '정말 어리석은 전쟁을 했다'라는 실감이 있었습니다. 실제, 일본군이 중국대륙에서 끔찍한 일을 했던 것을 자랑인듯 말하는 어른이 있어서 그러한 이야기를 간접적이긴해도 수차례 들었습니다. 동시에 공습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있었는가 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전해 듣는것을 포함해 여러가지를 듣다보니, 바보같은일을 한 나라에 태어나버렸다고 생각하고 정말로 일본이 싫어졌습니다.

내가 4살 때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6살 위인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3살 위인 부인과는 전후의 경험이 조금 다르군요. 다만 공습은 기억하고있어 자신의 마을이 불타는 것도 보고있었습니다. 졌다라는 굴욕감만은 있었습니다. 전후 미국인이 잔뜩와서 그것을 둘러싸고 모두가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미국인에게서 풍선껌과 초콜릿을 받는 것 같은 부끄러운 짓은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아이였습니다.

요즘 말하는 전기물(戦記物) 같은것도 꽤 읽었습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발행된 책에는 태평양전쟁에 대해서 '굉장히 반성하고있다'라던지 '사실은 이랬다'같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총을 쏘는 일 뿐이 아니라 예를 들면 레이더에 대해서 얼마나 대충만든 레이더였는지, 열심히 노력했는데 전부 헛수고였다는 것을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결코 영웅이 아닌 사람들이 쓴 책들이 꽤 출판된 겁니다.

좋은 시절이었다는 이야기따윈 정말로 없었습니다. 군함이 침몰한 후에 승무원들이 표류해서 어떻게 살아났는가하는 이야기를 포함해, 아이의 눈으로도 '사실 한심한 전쟁이었구나'라는 느낌만이 굉장히 있었습니다.

후에 로버트 웨스톨(Robert Westall)이 쓴 '기관총 요새의 소년들' 등을 읽을 때에 '아, 이 사람은 나의 선배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은 전시하의 소년으로 어른들이 '전쟁, 전쟁'이라고 하면서 진지하게 전쟁을 하지않는 것에 화가 나 있어 그것이 자신과 주변 세계의 경계를 가르는 계기가 되어있습니다. 웨스톨 쪽이 나보다는 연상인지. (편집 주: 1929년생입니다.) 그는 63세에 죽었습니다만.

나는 그의 책을 읽고 자신이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챘습니다. 나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대의가 있지 않을까'라던지 '무언가을 위해 죽는다'라고 생각해 그쪽 방향으로 쭉 가버리는 타입의 인간입니다. 좀 더 빨리 태어났더라면 절대로 열렬한 군국소년이 되어있었을 겁니다. 더욱 일찍 태어났더라면 지원해 전장에 가서는 날뛰다 바로 죽었을 인간입니다. 그 당시는 진정한 전쟁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에는 이미 죽었을 때 같은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행운인지 불행인지 나는 눈이 나빴기 때문에 특공에는 지원할수 없기에 선전 그림이나 만화 같은걸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전시중 비행기의 부품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어린시절의 전쟁의 기억입니다만 세상의 양상이 소위 전시하의 상태가 되는것은 쇼와 19년(1944년) 이후 나라 전체가 히스테릭이 되고부터입니다. 다만 우리 아버지는 현실주의에 허무주의자로 '천하나 국가같은거 나는 모른다'라고하는 인물이었기에 아버지의 이야기만 듣고 있으면 또 전혀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관동대지진대 스미다 구에 있던 육군피복제조창이라는 사람이 가장 죽었다는 곳에서 도망쳐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겨우 9살이었는데 여동생의 손을 잡고 도망나왔다는 것이 자랑이었습니다. 전쟁중에는 도쿄대공습 다음날 친척의 안부를 묻기위해 도쿄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두번 시체의 산을 보았습니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물으면 오즈 야스지로의 전쟁 전의 영화 '청춘의 꿈은 어디에'랑 판박이로 철저하게 찰나주의자.

전시중에는 병든 큰아버지를 대신해서 비행기의 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의 공장장을 하고있었습니다. 아는 사람 모두가 '이제 이 전쟁은 졌으니까 그만둬'라고 말하는데도 쇼와 20년(1945년)이 되어도 은행에서 돈빌려다가 투자하거나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버지는 세계정세가 어떻다라던가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군요. "전쟁은 내가 하는게 아니야. 장사로서 손님이 있고 주문이 있어 거기에 응해서 만들면 돈이 벌린다"라는 생각으로 했다고 그래서 전혀 후회도 하지 않아요. 세상을 크게 보지를 않는거죠.

전후에는 당연히 군수공장같은걸 하고있을 수는 없으니까, 남은 듀랄루민 재료로 바로 쏙하고 접히는 숟가락같은거나 적당한 물건을 만들었습니다만 물자가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날개돋힌듯 팔려버렸습니다. 그걸 한번에 만들어 팔아치워 매상을 나눠서 막생겼던 노동조합을 설득해서 보기좋게 해산했습니다. 그 후에는 공장만이 남았으니까 거기서 댄스홀을 하거나 했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사람이 왔지만, 우츠노미야宇都宮에서도 기차를 타지 않으면 갈수 없는 카누마鹿沼라는 곳이었기 때문에 좀 있으니 사람이 오지않아 망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도쿄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블루스를 추고있는것도 보곤 했습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됐을 무렵엔 태연히 '너 춤출줄도 모르냐?'라고 하는 아버지였습니다.

전쟁 전, 쇼와 10년(1935년)은 세계공황으로 불경기였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실은 그 시기가 영화의 전성기였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일이 있고 돈이 있으면 디플레이션이니까 즐겁게 살 수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그 시절은 정말 좋았어"라고 아버지도 말하곤 했습니다. 물론 도쿄의 일부만이었는지도 모르지만요.

그런 아버지가 전쟁에 대해 뭐라 말했는지 아십니까. "스탈린은 일본인민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그게 끝입니다. 나는 "아버지에게도 전쟁책임이 있을것이다"라고 말해 싸워습니다만 아버지는 그런 것을 짊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던겁니다. 전후에도 바로 미국인과 친구가 되어 "집에 놀러와라"라고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미국 쪽이 좋아. 소련은 싫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왜 소련이 싫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유가 없는 것이 싫었던걸까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자유롭게 살고있었으니까요.(웃음)

내가 일본을 다시 본 것은 30대가 되고나서


요즘 한도 카즈토시(半藤一利)씨의 '쇼와사(昭和史)'를 읽고 있지만 정말 괴로워서.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은 끔찍한 짓을 하고있으니까. 왜 옆나라에 가서 그런 전쟁을 했는가 생각합니다. 다른 길은 없었는지, 만주사변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생각합니다. 러일 전쟁이 끝났을 때 일본은 요동 반도에 대해서 '이것은 역시 중국의 것이니까 반환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겁니다. 그런 발상이 일본 안에는 눈꼽만치도 없었습니다. 제국주의의 시대였기 때문에 세계에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중국의 주변에는 소련도 있었지만 영국도 있고 조금 떨어지면 프랑스도 네덜란드도 미국도 있어서 세계에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 역사를 인간이 밟아왔다는걸 떠나서, 일본만 악당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해서 "마지막으로 들어갔을뿐인데 왜 나만 잡히는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거죠. "너는 강도였던거야"라는거니까요. 만주에 가서 지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식으로 으스댔었는지 하는 이야기도 어머니에게서 충분히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로 일본인은 안되겠구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일본 노래는 부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국의 등불을 위해 싸우진 않아'같은 러시아 민요를 부르면서 "그런 조국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러시아가 좋은가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만, 나는 너무나도 자신의 안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보다 소중한 무엇인가가 있는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일본을 다시 본 것은 30대가 되어서 처음 유럽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입니다. 유럽이라고 해도 극히 일부, 스웨덴을 어슬렁 거렸을 뿐입니다만 돌아와보니 자신이 얼마나 이 섬의 식물이나 자연을 좋아하는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일본은 굉장히 아름다운 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장기가 좋아진것이 아니라 일본의 풍토라는 것이 멋진것이라는 인식을 갖게되었습니다. 빈부와 관계없이 풍부한 환경 속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이지 신궁에 굉장한 숲이 있고 그것이 인간이 만든 숲이라는것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땅의 힘을 가진 섬에 있구나라는걸 실로 완만하게 조금씩 알게되었습니다.

이것도 한도씨의 말을 옮기는겁니다만, 일본의 역사는 40년마다 구별됩니다. 1865년의 개국에서 40년에 러일전쟁에 이겨 거대한 배상금을 남겼습니다. 그 후 40년가 걸려 군벌정부가 나라를 망쳤습니다. 그리고 1945년부터 1985년 무렵까지 40년간은 경제성장을 하고 잘 되는듯 보였습니다. 버블이 터진 후에는 어쩔줄 모른채 몰락해가는 40년이 되었습니다. 한도씨의 의견이 옳다면 40년간 떨어지니까, '잃어버린 20년'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20년 정도 더 추락합니다.(웃음)

역사라는것을 말하자면 홋타 요시에(堀田善衛)씨는 '역사는 앞에 있다. 미래는 뒤에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보이는것은 눈 앞에 있는 옛날 일 뿐입니다. 일본 군벌의 역사를 보고싶지 않은것은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정치가를 한다면서 그 정도의 일에 대해 교육을 받고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통하지 않습니다.

여태껏 거짓말을 해왔으니까 계속하는게 낫다


헌법을 바꾸는것에 대해서는 반대인게 당연합니다. 선거를 하면 득표율도 투표율도 낮은 그런 정권이 혼잡을 틈타서는 문득 생각난듯한 방법으로 헌법을 바꾸려하다니 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법적으로는 96조 조문을 바꾸어 그 후에 동행한다는게 성립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사기입니다.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수이면 올바른거라고도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바꾸기 위해서는 제대로 논의를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속내가 흘려서 대소동이 되면 흐지부지하게 속이면서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같은 말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걸 볼때마다 정부의 톱이나 정당의 톱들의 역사감각의 부재나 줏대없음에 기가막힐 뿐입니다. 생각이 부족한 인간은 헌법을 건드리지 않는게 좋습니다. 정말로 공부하지 않고 그때그때 생각나는대로나 귀에 좋은 말밖에 하지 않는 놈의 말만 듣고 정책을 결정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국제적인 무대에 나가보면 온통 질타를 받고 당황해서는 "무라야마 담화를 기본적으로 존중한다"같은 말을 합니다. 정말이지, '기본적'이란 뭡니까. '너는 그걸 전부 부정하던게 아니었는지?"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아베노믹스도 조만간 망할거니까요.

물론 헌법 9조와 대조해보면 자위대는 너무나도 이상합니다. 이상하지만 그 편이 낫습니다. 국방군으로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직업군인 같은건 공무원 집단으로 정말로 쓸모없는게 됩니다. 지금 자위대가 여기저기의 재해에 출동하는 것을 보고 역시 이것은 좋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원들은 잘하고 있고, 예의바릅니다. 이라크에 가지않을 수 없게 되었어도 한방도 안쏘고 한명도 죽이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걸푸전후의 페르시아만에 소해정을 내보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만 기뢰가 없을법한 해역을 묵묵히 소해하고, 작은 배라서 큰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나는 잠자코있었습니다만 감동했습니다. 만약 정말로 전투가 일어날만한 일이 있었다면 제대로 그때에 생각해서 헌법조항을 바꿀것인가 바꾸지 않을것인지는 모르지만,어쨌든 자위를 위해서 활동하는걸로 하면 좋습니다. 일어나는 것은 절대로 늦지만 스스로 손을 대지는 않고 과잉 보호는 하지않는걸로. 그렇게하지 않으면 정말로 이 나라의 사람들은 국제정치에 익숙하지 않기에 곧 마음대로 조종해버립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스위스나 스웨덴같은 중립국을 동경한것은 사실입니다. 평화로운 나라가 있어 하이디가 뛰어다니는 이미지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달라서 비무장중립국이라는 것은 현실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리얼리즘으로 생각해도 일정한 무장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만 그 이상은 '어이 잠깐'이라고 하는것이 역시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보취급당하지만 최신식 전차 정도는 다소 만들어도 좋습니다. 사실은 건담이라도 만들어 행진시키면 좋지않을까 생각합니다만(웃음). '실제 능력은 비밀이니까 공표 안한다'라고 말하면서, 이건 농담입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이만큼 거짓말을 해온거니까 계속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합성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하는 것으로 '전쟁 전의 일본은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지만 나빴던거 맞거든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위안부 문제도 각각의 민족의 명예 문제이니까 제대로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해야합니다. 영토 문제는 절반으로 나누던가 또는 '양방으로 관리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 문제는 아무리 옥신각신해도, 국제사법제판소에 재소해도 해결될리가 없습니다. 과거 일본이 팽창했던 것처럼 팽창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전쟁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 보다도 일본의 산업구조를 바꿔가려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정말로 생각합니다. 이런 원전 투성이의 나라에서 전쟁 따위 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중국이 팽창하고 있는 것은 중국 내발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중국내의 모순은 이제 세계의 모순이기 때문에 단지 군비를 강화하고 국방군으로하면 끝이나는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산업구조를 어떻게 하는가


법치국가로서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본국헌법의 기둥이지만, 역사학자인 호리고메 요조(堀米庸三)씨 등은 일본에는 애초에 기본적 인권의 근거가 되는 사상이 없다고 쓰고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그렇게 말해지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 인권'이라고 하지만 그 발상은 자신들의 안에는 없다고. 그럼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해 호리고메 씨는 죽기 전에 '불교의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불성이군요. 그것에 대해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씨는 가마쿠라 무사의 '명예를 소중히 여김'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수 있다고 말합니다만 이건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홋타 요시에 씨는 또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다만 일본의 전통 속에 근거가 되는 사상이 없더라도 역시 기본적 인권보다 좋은 개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쪽 끝에 있는 나라로서 그런것 없이 살아왔지만 세계화, 국제화의 시대에는 공통의 언어를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권이라는 개념을 수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자신들의 문화적인 전통이나 여러가지 속에서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않되는 것은 산업구조를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자신들이 먹거나 입는것, 사는 곳은 스스로 만들자"라는 사상을 가지지 않고 그저 소비하고 모두가 서비스업 같은 그런 나라로 만들어버려 어쩔 수 없다고, 잘될리가 없는건 당연합니다. 일해서 숫자만 받아서는 그걸로 이것저것 사고 쓰고하면, 여러가지 실감이 점점 멀어져갑니다. 실감을 손에 넣으려 조금씩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일정량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에 쫓겨 녹초가 되어서 돌아와서는 보고있는것은 TV나 문자뿐, 영문을 알수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즉 지금 세계를 덮고있는 이 마케팅 중심의 방식은 안됩니다. 왜 우리가 3개 100엔의 바나나를 먹고있는가. 자국에서는 누구도 만들지 않는것 같은 옷을 태연히 입고, 버리고, 그건 이상합니다. 그렇게 살다간 변변한 일만 당할리가 없습니다. 일본은 어느 시기까지는 딸이나 아들들을 위해 어머니가 입는것을 꿰메고 있었지만 지금은 바늘과 실도 모르는 엄마들이 잔뜩 있습니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라이터도 없고 성냥도 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무사히 이 세상을 살아나갈수 있을까요. 무리입니다. 끈도 묶을 줄 모릅니다. 이렇게되면 "징병제를 하면 좋다"같은 소릴 하는 바보가 나옵니다. 그 사람들은 나보다 아래니까 자신이 징병되어 끔찍한 꼴을 당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50세나 60세가 되어도 "너가 먼저 가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고 싶지 않다면 자신의 아들을, 아들이 없으면 손자를 보내라고. 그러면 징병제가 어떤 것인가를 알테니까요.

"자신은 잘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잘하지 못한다"라는 발상은 버리라고. 자신이 제대로 하고있다면 그정도 모두 제대로 하고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징병 제도라는건 최악입니다. 한국에서도 징병제도가 얼마나 젊은이를 망치는가하는겁니다. 총의 갯수만큼 줄서서 행진한다고 되는게 아니니까요. 전쟁을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람이 붐비는 나라에서 전쟁하면 어떻게됩니까. 전쟁 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지금 유행하는 것은 하지마라


헌법은 목표이며 조문을 잘 만든다고 가난이 없어진다던가 그런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후의 일본은 그 헌법에 지켜지면서 해온 경제건설 덕분에,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수탈해온 덕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굶어 죽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는 나라가 될 수 있었 습니다. 만약 건강보험제도가 없었더라면 의사에 갈 수 없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 관계자는 거의 치과에는 갈 수 없었겠죠.(웃음) 정말로 어느 시기까지는 전후에 세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고, 우익 정치가들도 충분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상이 무리가 되면, "이 제도는 나쁜거 아닌가"라던가 "생활보호제도가 나쁜게 아닐까" 등 여러가지를 말해집니다. 어떤 제도도 악용하는 인간은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예로 드는것은 잘못입니다. 다만, 어느 지방자치체도 재정은 경직화하고 있어, 복지관계만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느낍니다. 내가 살고있는 토코자와(所沢)의 재정지출을 보고있어도, 이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디선가 질질 끌리는 가난이 되어가는걸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이제 그런것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그러니 미래의 희망같은게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의 재미라던지 친구와 따뜻한 시간을 가진다던지, 좋아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기쁘다던가 앞으로 사람은 그런것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미래의 보장같은건 없습니다. 그런 소리해도 아무런 격려도 안되지만(웃음) 하지만 본래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나는 작업장 옆에 보육원을 만들었습니다만, 이건 정말로 좋았습니다. 가장 좋았던건 나에게 있어서입니다. 꼬마들이 줄줄이 걷고있는 것을 보면 제정신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면 그건 암담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지만 그럼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거냐고, 그런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역시 축복하지 않으면 안되고 실제 축복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구자체는 줄어도 좋습니다. 일본의 적정 인구는 3500만명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농업기술의 발전도 포함하면 좀 더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5000만명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1억명이 넘는 인구가 있으니까 애니메이션같은게 성립한거죠. 시장이 작으면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인구가 줄어드니까 앞으로 애니메이션도 성립하지 않게됩니다.(웃음) 하지만 무리면 하지않아도 좋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거인군이여 영원하라"라던가 완전히 이상한거죠. "지브리여 영원하라"도 말도 안됩니다. 스즈키씨가 쓰러지면 전부 죽습니다. 스즈키 토시오의 허리가 삐끗하면 전부 끝입니다.(웃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한다면, "유행하고 있는것은 하지마라"라는 것. 애니메이션도 그렇지만 유행하고 있는 것을 뒤쫓으면 늦습니다. 지금 모두 입만 열면 "불안하다"라고 말하지만 "그럼 전에는 불안하지 않았어?"라고 묻고싶어질 정도로, 사실은 상황은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일하면 그걸로 좋습니다. 일할 장소가 없으면 스스로 만들면 됩니다. 불안이 유행하니까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유행하고 있는것은 하지 않는것이 좋습니다.

(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