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시작할때 주위를 보니 연인으로 보이는 30대 이후의 분들이
많이 계셔서 깜짝 놀랬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일장기 마크의 비행기가 나는 씬에서 모두들 영화에 몰입된 나머지,
"죽여!"
"저런 개념없는! 저래서 미야자키는 안돼!"라고 외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극중 관동대지진이 나니 모두들 흥분해서
"꼴좋다! 일본놈들!!"
"바다에 가라앉아버려!" 라고 외치며 스크린에 나쵸, 음료수의 얼음, 프링글스를 던졌습니다.
저도 너무나 분한 마음에 옆에 놨던 다키마쿠라를 집어던지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뒷좌석에서 어르신들이 박수를 치시더군요.
전범기가 펄럭이는 씬에서는 야유 소리가 시일야방성대곡을 무색케 터져 나왔습니다.
한 50대의 아저씨는 벌떡 일어나 못볼걸 봤다며 음료수 빨대로 자신의 눈를 자해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영화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아아, 안중군 장군님! 아아 윤봉길 의사님!! 김구 선생님!!! 죄송합니다!!!" 라며 울부짖었고 이윽고 누군가가 우렁차게 외치는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과 애국가와 독도는 우리땅을 모두가 손에 손잡고 부를때에는 눈물을 아니흘리는 자가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한 여대생이 앞에 나와서 자신의 토토로가 그려진 다이어리를 찢으며 일본 상품을 써서 죄송하다며 무릎을 꿇고 즉석 사죄를 하였고,
다른 남학생도 애니플러스로 진격의 거인을 보던 스마트폰을 그자리에서 부수었으며 여대생의 옆에 같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 40대 지긋한 아저씨도 회사로 전화를 하여 "일본과의 계약건은 없던것으로 해!" 라고 하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영화관 한구석에는 일본제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누군가 준비해온 전범기를 그위에 덮고 불을 질렀습니다.
우리는 그 불 주위에서 손에 손을 잡고 다시한번 애국가와 독도는 우리땅, 강남 스타일을 불렀고, 눈물흘리며 무릎 꿇은 사람들에게 말춤을 추며 다가가
그들을 부둥켜 앉고 같이 통곡하였습니다.
9월 5일은 저에게 또다른 경술국치요, 제 인생의 흑역사였습니다.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와 요동까지 정벌한 우리의 개척정신, 단군과 치우천황의 영혼은 우리를 용서했을까요.
지금도 죄책감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수 없어 뿌옇게 보이는 자판을 두들깁니다.
Over 140 Characters
http://twitter.com/KangKyuSung 140자 이상 긴 글을 쓰는 곳
2013년 9월 5일 목요일
2013년 7월 18일 목요일
미야자키 하야오 "헌법을 바꾸는건 당치도 않다."
헌법개정 특집
자민당에 정권이 돌아가 반년 이상이 지났습니다.총리 취임 당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헌법개정에 의욕을 불태우고있는 아베 총리는 차근차근 그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자민당 자체가 창당 이후 '헌법개정'을 당의 사명으로 내걸고 있기에, 이것은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하지만 자민당이 내놓고있는 새 헌법의 초안을, 또 아베 총리가 그리고 있는 헌법 96조 개정의 흐름, 그리고 본론이 되는 헌법9조 개정을 얼만큼의 사람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무관심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미디어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향후의 일본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이 되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 주장을 명확하게 하는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제9조
제2장 전쟁의 포기
제9조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의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이를 영구히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위루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은 이를 보전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헌법을 바꾸는 것은 당치도 않다.
조금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군국소년이 되어있었다.
내가 4살 때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6살 위인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3살 위인 부인과는 전후의 경험이 조금 다르군요. 다만 공습은 기억하고있어 자신의 마을이 불타는 것도 보고있었습니다. 졌다라는 굴욕감만은 있었습니다. 전후 미국인이 잔뜩와서 그것을 둘러싸고 모두가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미국인에게서 풍선껌과 초콜릿을 받는 것 같은 부끄러운 짓은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아이였습니다.
요즘 말하는 전기물(戦記物) 같은것도 꽤 읽었습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발행된 책에는 태평양전쟁에 대해서 '굉장히 반성하고있다'라던지 '사실은 이랬다'같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총을 쏘는 일 뿐이 아니라 예를 들면 레이더에 대해서 얼마나 대충만든 레이더였는지, 열심히 노력했는데 전부 헛수고였다는 것을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결코 영웅이 아닌 사람들이 쓴 책들이 꽤 출판된 겁니다.
좋은 시절이었다는 이야기따윈 정말로 없었습니다. 군함이 침몰한 후에 승무원들이 표류해서 어떻게 살아났는가하는 이야기를 포함해, 아이의 눈으로도 '사실 한심한 전쟁이었구나'라는 느낌만이 굉장히 있었습니다.
후에 로버트 웨스톨(Robert Westall)이 쓴 '기관총 요새의 소년들' 등을 읽을 때에 '아, 이 사람은 나의 선배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은 전시하의 소년으로 어른들이 '전쟁, 전쟁'이라고 하면서 진지하게 전쟁을 하지않는 것에 화가 나 있어 그것이 자신과 주변 세계의 경계를 가르는 계기가 되어있습니다. 웨스톨 쪽이 나보다는 연상인지. (편집 주: 1929년생입니다.) 그는 63세에 죽었습니다만.
나는 그의 책을 읽고 자신이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챘습니다. 나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대의가 있지 않을까'라던지 '무언가을 위해 죽는다'라고 생각해 그쪽 방향으로 쭉 가버리는 타입의 인간입니다. 좀 더 빨리 태어났더라면 절대로 열렬한 군국소년이 되어있었을 겁니다. 더욱 일찍 태어났더라면 지원해 전장에 가서는 날뛰다 바로 죽었을 인간입니다. 그 당시는 진정한 전쟁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에는 이미 죽었을 때 같은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행운인지 불행인지 나는 눈이 나빴기 때문에 특공에는 지원할수 없기에 선전 그림이나 만화 같은걸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전시중 비행기의 부품을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관동대지진대 스미다 구에 있던 육군피복제조창이라는 사람이 가장 죽었다는 곳에서 도망쳐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겨우 9살이었는데 여동생의 손을 잡고 도망나왔다는 것이 자랑이었습니다. 전쟁중에는 도쿄대공습 다음날 친척의 안부를 묻기위해 도쿄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두번 시체의 산을 보았습니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물으면 오즈 야스지로의 전쟁 전의 영화 '청춘의 꿈은 어디에'랑 판박이로 철저하게 찰나주의자.
전시중에는 병든 큰아버지를 대신해서 비행기의 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의 공장장을 하고있었습니다. 아는 사람 모두가 '이제 이 전쟁은 졌으니까 그만둬'라고 말하는데도 쇼와 20년(1945년)이 되어도 은행에서 돈빌려다가 투자하거나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버지는 세계정세가 어떻다라던가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군요. "전쟁은 내가 하는게 아니야. 장사로서 손님이 있고 주문이 있어 거기에 응해서 만들면 돈이 벌린다"라는 생각으로 했다고 그래서 전혀 후회도 하지 않아요. 세상을 크게 보지를 않는거죠.
전후에는 당연히 군수공장같은걸 하고있을 수는 없으니까, 남은 듀랄루민 재료로 바로 쏙하고 접히는 숟가락같은거나 적당한 물건을 만들었습니다만 물자가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날개돋힌듯 팔려버렸습니다. 그걸 한번에 만들어 팔아치워 매상을 나눠서 막생겼던 노동조합을 설득해서 보기좋게 해산했습니다. 그 후에는 공장만이 남았으니까 거기서 댄스홀을 하거나 했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사람이 왔지만, 우츠노미야宇都宮에서도 기차를 타지 않으면 갈수 없는 카누마鹿沼라는 곳이었기 때문에 좀 있으니 사람이 오지않아 망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도쿄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블루스를 추고있는것도 보곤 했습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됐을 무렵엔 태연히 '너 춤출줄도 모르냐?'라고 하는 아버지였습니다.
전쟁 전, 쇼와 10년(1935년)은 세계공황으로 불경기였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실은 그 시기가 영화의 전성기였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일이 있고 돈이 있으면 디플레이션이니까 즐겁게 살 수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그 시절은 정말 좋았어"라고 아버지도 말하곤 했습니다. 물론 도쿄의 일부만이었는지도 모르지만요.
그런 아버지가 전쟁에 대해 뭐라 말했는지 아십니까. "스탈린은 일본인민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그게 끝입니다. 나는 "아버지에게도 전쟁책임이 있을것이다"라고 말해 싸워습니다만 아버지는 그런 것을 짊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던겁니다. 전후에도 바로 미국인과 친구가 되어 "집에 놀러와라"라고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미국 쪽이 좋아. 소련은 싫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왜 소련이 싫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유가 없는 것이 싫었던걸까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자유롭게 살고있었으니까요.(웃음)
내가 일본을 다시 본 것은 30대가 되고나서
중국의 주변에는 소련도 있었지만 영국도 있고 조금 떨어지면 프랑스도 네덜란드도 미국도 있어서 세계에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 역사를 인간이 밟아왔다는걸 떠나서, 일본만 악당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해서 "마지막으로 들어갔을뿐인데 왜 나만 잡히는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거죠. "너는 강도였던거야"라는거니까요. 만주에 가서 지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식으로 으스댔었는지 하는 이야기도 어머니에게서 충분히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로 일본인은 안되겠구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일본 노래는 부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국의 등불을 위해 싸우진 않아'같은 러시아 민요를 부르면서 "그런 조국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러시아가 좋은가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만, 나는 너무나도 자신의 안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보다 소중한 무엇인가가 있는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일본을 다시 본 것은 30대가 되어서 처음 유럽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입니다. 유럽이라고 해도 극히 일부, 스웨덴을 어슬렁 거렸을 뿐입니다만 돌아와보니 자신이 얼마나 이 섬의 식물이나 자연을 좋아하는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일본은 굉장히 아름다운 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장기가 좋아진것이 아니라 일본의 풍토라는 것이 멋진것이라는 인식을 갖게되었습니다. 빈부와 관계없이 풍부한 환경 속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이지 신궁에 굉장한 숲이 있고 그것이 인간이 만든 숲이라는것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땅의 힘을 가진 섬에 있구나라는걸 실로 완만하게 조금씩 알게되었습니다.
이것도 한도씨의 말을 옮기는겁니다만, 일본의 역사는 40년마다 구별됩니다. 1865년의 개국에서 40년에 러일전쟁에 이겨 거대한 배상금을 남겼습니다. 그 후 40년가 걸려 군벌정부가 나라를 망쳤습니다. 그리고 1945년부터 1985년 무렵까지 40년간은 경제성장을 하고 잘 되는듯 보였습니다. 버블이 터진 후에는 어쩔줄 모른채 몰락해가는 40년이 되었습니다. 한도씨의 의견이 옳다면 40년간 떨어지니까, '잃어버린 20년'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20년 정도 더 추락합니다.(웃음)
역사라는것을 말하자면 홋타 요시에(堀田善衛)씨는 '역사는 앞에 있다. 미래는 뒤에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보이는것은 눈 앞에 있는 옛날 일 뿐입니다. 일본 군벌의 역사를 보고싶지 않은것은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정치가를 한다면서 그 정도의 일에 대해 교육을 받고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통하지 않습니다.
여태껏 거짓말을 해왔으니까 계속하는게 낫다
법적으로는 96조 조문을 바꾸어 그 후에 동행한다는게 성립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사기입니다.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수이면 올바른거라고도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바꾸기 위해서는 제대로 논의를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속내가 흘려서 대소동이 되면 흐지부지하게 속이면서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같은 말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걸 볼때마다 정부의 톱이나 정당의 톱들의 역사감각의 부재나 줏대없음에 기가막힐 뿐입니다. 생각이 부족한 인간은 헌법을 건드리지 않는게 좋습니다. 정말로 공부하지 않고 그때그때 생각나는대로나 귀에 좋은 말밖에 하지 않는 놈의 말만 듣고 정책을 결정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국제적인 무대에 나가보면 온통 질타를 받고 당황해서는 "무라야마 담화를 기본적으로 존중한다"같은 말을 합니다. 정말이지, '기본적'이란 뭡니까. '너는 그걸 전부 부정하던게 아니었는지?"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아베노믹스도 조만간 망할거니까요.
물론 헌법 9조와 대조해보면 자위대는 너무나도 이상합니다. 이상하지만 그 편이 낫습니다. 국방군으로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직업군인 같은건 공무원 집단으로 정말로 쓸모없는게 됩니다. 지금 자위대가 여기저기의 재해에 출동하는 것을 보고 역시 이것은 좋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원들은 잘하고 있고, 예의바릅니다. 이라크에 가지않을 수 없게 되었어도 한방도 안쏘고 한명도 죽이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걸푸전후의 페르시아만에 소해정을 내보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만 기뢰가 없을법한 해역을 묵묵히 소해하고, 작은 배라서 큰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나는 잠자코있었습니다만 감동했습니다. 만약 정말로 전투가 일어날만한 일이 있었다면 제대로 그때에 생각해서 헌법조항을 바꿀것인가 바꾸지 않을것인지는 모르지만,어쨌든 자위를 위해서 활동하는걸로 하면 좋습니다. 일어나는 것은 절대로 늦지만 스스로 손을 대지는 않고 과잉 보호는 하지않는걸로. 그렇게하지 않으면 정말로 이 나라의 사람들은 국제정치에 익숙하지 않기에 곧 마음대로 조종해버립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스위스나 스웨덴같은 중립국을 동경한것은 사실입니다. 평화로운 나라가 있어 하이디가 뛰어다니는 이미지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달라서 비무장중립국이라는 것은 현실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리얼리즘으로 생각해도 일정한 무장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만 그 이상은 '어이 잠깐'이라고 하는것이 역시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보취급당하지만 최신식 전차 정도는 다소 만들어도 좋습니다. 사실은 건담이라도 만들어 행진시키면 좋지않을까 생각합니다만(웃음). '실제 능력은 비밀이니까 공표 안한다'라고 말하면서, 이건 농담입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이만큼 거짓말을 해온거니까 계속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합성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하는 것으로 '전쟁 전의 일본은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지만 나빴던거 맞거든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위안부 문제도 각각의 민족의 명예 문제이니까 제대로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해야합니다. 영토 문제는 절반으로 나누던가 또는 '양방으로 관리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 문제는 아무리 옥신각신해도, 국제사법제판소에 재소해도 해결될리가 없습니다. 과거 일본이 팽창했던 것처럼 팽창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전쟁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 보다도 일본의 산업구조를 바꿔가려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정말로 생각합니다. 이런 원전 투성이의 나라에서 전쟁 따위 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중국이 팽창하고 있는 것은 중국 내발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중국내의 모순은 이제 세계의 모순이기 때문에 단지 군비를 강화하고 국방군으로하면 끝이나는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산업구조를 어떻게 하는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않되는 것은 산업구조를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자신들이 먹거나 입는것, 사는 곳은 스스로 만들자"라는 사상을 가지지 않고 그저 소비하고 모두가 서비스업 같은 그런 나라로 만들어버려 어쩔 수 없다고, 잘될리가 없는건 당연합니다. 일해서 숫자만 받아서는 그걸로 이것저것 사고 쓰고하면, 여러가지 실감이 점점 멀어져갑니다. 실감을 손에 넣으려 조금씩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일정량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에 쫓겨 녹초가 되어서 돌아와서는 보고있는것은 TV나 문자뿐, 영문을 알수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즉 지금 세계를 덮고있는 이 마케팅 중심의 방식은 안됩니다. 왜 우리가 3개 100엔의 바나나를 먹고있는가. 자국에서는 누구도 만들지 않는것 같은 옷을 태연히 입고, 버리고, 그건 이상합니다. 그렇게 살다간 변변한 일만 당할리가 없습니다. 일본은 어느 시기까지는 딸이나 아들들을 위해 어머니가 입는것을 꿰메고 있었지만 지금은 바늘과 실도 모르는 엄마들이 잔뜩 있습니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라이터도 없고 성냥도 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무사히 이 세상을 살아나갈수 있을까요. 무리입니다. 끈도 묶을 줄 모릅니다. 이렇게되면 "징병제를 하면 좋다"같은 소릴 하는 바보가 나옵니다. 그 사람들은 나보다 아래니까 자신이 징병되어 끔찍한 꼴을 당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50세나 60세가 되어도 "너가 먼저 가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고 싶지 않다면 자신의 아들을, 아들이 없으면 손자를 보내라고. 그러면 징병제가 어떤 것인가를 알테니까요.
"자신은 잘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잘하지 못한다"라는 발상은 버리라고. 자신이 제대로 하고있다면 그정도 모두 제대로 하고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징병 제도라는건 최악입니다. 한국에서도 징병제도가 얼마나 젊은이를 망치는가하는겁니다. 총의 갯수만큼 줄서서 행진한다고 되는게 아니니까요. 전쟁을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람이 붐비는 나라에서 전쟁하면 어떻게됩니까. 전쟁 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지금 유행하는 것은 하지마라
그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상이 무리가 되면, "이 제도는 나쁜거 아닌가"라던가 "생활보호제도가 나쁜게 아닐까" 등 여러가지를 말해집니다. 어떤 제도도 악용하는 인간은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예로 드는것은 잘못입니다. 다만, 어느 지방자치체도 재정은 경직화하고 있어, 복지관계만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느낍니다. 내가 살고있는 토코자와(所沢)의 재정지출을 보고있어도, 이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디선가 질질 끌리는 가난이 되어가는걸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이제 그런것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그러니 미래의 희망같은게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의 재미라던지 친구와 따뜻한 시간을 가진다던지, 좋아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기쁘다던가 앞으로 사람은 그런것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미래의 보장같은건 없습니다. 그런 소리해도 아무런 격려도 안되지만(웃음) 하지만 본래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나는 작업장 옆에 보육원을 만들었습니다만, 이건 정말로 좋았습니다. 가장 좋았던건 나에게 있어서입니다. 꼬마들이 줄줄이 걷고있는 것을 보면 제정신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면 그건 암담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지만 그럼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거냐고, 그런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역시 축복하지 않으면 안되고 실제 축복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구자체는 줄어도 좋습니다. 일본의 적정 인구는 3500만명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농업기술의 발전도 포함하면 좀 더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5000만명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1억명이 넘는 인구가 있으니까 애니메이션같은게 성립한거죠. 시장이 작으면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인구가 줄어드니까 앞으로 애니메이션도 성립하지 않게됩니다.(웃음) 하지만 무리면 하지않아도 좋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거인군이여 영원하라"라던가 완전히 이상한거죠. "지브리여 영원하라"도 말도 안됩니다. 스즈키씨가 쓰러지면 전부 죽습니다. 스즈키 토시오의 허리가 삐끗하면 전부 끝입니다.(웃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한다면, "유행하고 있는것은 하지마라"라는 것. 애니메이션도 그렇지만 유행하고 있는 것을 뒤쫓으면 늦습니다. 지금 모두 입만 열면 "불안하다"라고 말하지만 "그럼 전에는 불안하지 않았어?"라고 묻고싶어질 정도로, 사실은 상황은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일하면 그걸로 좋습니다. 일할 장소가 없으면 스스로 만들면 됩니다. 불안이 유행하니까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유행하고 있는것은 하지 않는것이 좋습니다.
2013년 5월 20일 월요일
조국과 여자들(종군위안부의 노래)
조국과 여자들 (종군위안부의 노래)
祖国と女達(従軍慰安婦の唄)
작사/작곡 : 미와 아키히로(美輪明宏)
북쪽은 아오모리부터 남쪽은 오키나와
팔리고 사여서 오늘도 여행간다
다른 사투리로 위로해 가며
포로인 여죄수도 같은 동료다
거친 피부에 여윈 뺨
오늘도 각오의 마지막 의상
만세 만세
매일 백에서 이백 병사들을 상대로
아침해가 떠서 달이 질때까지
조만간 죽을 것이 분명한 남자
텅빈 하늘을 바라보는 여자
눈물도 메말라서 아프지도 않아
거기에는 신도 부처도 없어
만세 만세
누구의 씨인지 모르는 아기를 남기고
죽은 여자인지 총을 한손에
사랑하는 젊은 병사와 떨어진 여자인지
노래할 수 있는 여자는 자장가를 부른다
너무 무서워서 미쳐버린 여자
싫어하는 장교에 베어진 여자
만세 만세
남자는 좋겠네 부럽잖아
죽으면 죽는대로 명예로운 전사라고해서
훌륭한 신사에 모셔지는걸
나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지금쯤 훈장 투성이
만세 만세
전쟁에 져서 돌아가니 나라의 사람들에게
훈장대신에 침을 맞고
뒤에서 손가락질 당해 욕을 들어
조국을 위해 죽어간 동료의
환영을 안고 오늘도 거리에 선다
만세 만세
일본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
만세 만세
PS1 : "조국과 여자들(종군위안부의 노래)"는 1975년 2월 25일에 발매된 미와 아키히로의 첫 정규 앨범 '백주(百呪)'에 첫 트랙으로 수록된 곡.
PS2 : 한국인 종군위안부가 지었다는 출처가 확인 안되는 언급이 있던데, 날조이거나 다른 노래와 착각한듯 싶습니다. 작곡/작사의 미와 아키히로는 "내가 전쟁 후 친해진 종군위안부로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일본인이었어요"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미와 아키히로가 "조국과 여자들(종군위안부의 노래)"를 만든 이유
PS3 : 미와 아키히로는 원령공주에서 모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황야의 마녀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좌익계 문화계 인사로 분류되지만 사적으로는 미시마 유키오와 친분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2013년 1월 1일 화요일
덕후기관
----
"하지만 덕후라도 쓰는 언어는 주변사람들이 쓰는 언어와 같지 않나? 갓난아기는 일본어를 뇌에 각인시킨 채 태어나는게 아니야. 그것이야말로 언어가 후천적인 학습의 결과라는 증거 아닌가?"
"옛날 인터넷이 없던 PC통신 시절, 시삽은 회원들이 사용하는 말 따위에 신경쓰지 않았어. ANC, 만사, 애니메이트, 각지에 모여든, 사는 지역도 연령대도 다른 회원들은 처음에는 평범한 통신체로 이야기하게 됐지. 하지만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어. 얼마 안가 회원들은 업로더들이 올려주는 일본 애니와 애니송을 듣고 조금씩 글을 쓰게됐지. 제대로 된 어학교재로 배운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다쟈레같은 문학적 기교를 구사해가며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했어. 그 제1세대의 언어를 덕후체라고 한다능."
존 폴은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뒤,
"덕후체를 모국어로 자라난 덕후가 마찬가지로 덕후체를 모국어로 자라난 다른 덕후들과 접촉했을때, 이전까지의 경직된 덕후체에는 없었던 보다 과감하고 오그라드는 문법이 태어났다. 고정닉들이 차마 쪽팔려서 사용하지 않던 문법을 뉴비들이 만들어낸거지. 그것은 일본어를 기본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원본을 직접 들으며 성장한 원어민들의 말과는 틀려. 서툰 일본어로 하는 부자연스러운 대화를 들으며 자란 세대가 새로이 창출해낸 말이다. 소레오 한본어라고 유우.
카레라가 올드덕후의 언어가 가지고 있지 않던 무즈까시 문법을 창출해낸 것은 뇌가 소노나까니 미리 가지고 있던 요소를 조합해 문장오 츠쿠르 구조를 못테잇타카라다."
"그 선천적인 국어파괴기능이 덕후문법이라는 건가?"
"유전자니 각인사레테이루 뇌노 기능이다. 언어오 츠쿠르 기관이지."
뇌 안에 미리 구비되어있던, 언어를 만들어 내는 기관.
그 기관이 발하는 덕후의 징조.
"뇌에 각인된 언어 형태 중에 덕후를 나타내는 문법이 숨겨져 있다면 문화적으로 불안정한 한국의 인터넷을 분석하는 것으로 덕후의 발생을 예측할 수 있지.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은 그렇게 생각했어."
----
"4chan /jp/의 양키들의 회화속에도 이런 구조가 섞여있었으니까. 단 이런 문법에 의한 말을 오래 듣고 있던 한국인의 뇌에는 어떤 종류의 변화가 발생하지. 어떤 가치판단에 관한 뇌기능이 억제되는 거야. 그게 이른바 '애국심'이라는 것을 비틀어 놓지. 특정한 경향으로 말이야."
----
"...일빠가 먼저인가, 덕후가 먼저인가."
존 폴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거다."
----
"일빠와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것은 달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내게는 그렇게 이야기할 자신이 없는데." 존 폴은 고개를 가로저은 뒤, "윤서인은 '동경의 좁은 라면집에서 라면이랑 생맥주, 교자만두 시켜놓고 야구중계를 보고있으면 캬~그 기분! 일본사람이 된듯!'이라고 한적이 있지. 문화는 마음을 강간한다. 국가나 민족 같은 것은 그 위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쓸모없는 귀족 같은 거야. 모에는 의미를 가로지를 수 있어."
----
"넌 미쳤어."
나는 존 폴이 제 정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덕후라도 쓰는 언어는 주변사람들이 쓰는 언어와 같지 않나? 갓난아기는 일본어를 뇌에 각인시킨 채 태어나는게 아니야. 그것이야말로 언어가 후천적인 학습의 결과라는 증거 아닌가?"
"옛날 인터넷이 없던 PC통신 시절, 시삽은 회원들이 사용하는 말 따위에 신경쓰지 않았어. ANC, 만사, 애니메이트, 각지에 모여든, 사는 지역도 연령대도 다른 회원들은 처음에는 평범한 통신체로 이야기하게 됐지. 하지만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어. 얼마 안가 회원들은 업로더들이 올려주는 일본 애니와 애니송을 듣고 조금씩 글을 쓰게됐지. 제대로 된 어학교재로 배운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다쟈레같은 문학적 기교를 구사해가며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했어. 그 제1세대의 언어를 덕후체라고 한다능."
존 폴은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뒤,
"덕후체를 모국어로 자라난 덕후가 마찬가지로 덕후체를 모국어로 자라난 다른 덕후들과 접촉했을때, 이전까지의 경직된 덕후체에는 없었던 보다 과감하고 오그라드는 문법이 태어났다. 고정닉들이 차마 쪽팔려서 사용하지 않던 문법을 뉴비들이 만들어낸거지. 그것은 일본어를 기본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원본을 직접 들으며 성장한 원어민들의 말과는 틀려. 서툰 일본어로 하는 부자연스러운 대화를 들으며 자란 세대가 새로이 창출해낸 말이다. 소레오 한본어라고 유우.
카레라가 올드덕후의 언어가 가지고 있지 않던 무즈까시 문법을 창출해낸 것은 뇌가 소노나까니 미리 가지고 있던 요소를 조합해 문장오 츠쿠르 구조를 못테잇타카라다."
"그 선천적인 국어파괴기능이 덕후문법이라는 건가?"
"유전자니 각인사레테이루 뇌노 기능이다. 언어오 츠쿠르 기관이지."
뇌 안에 미리 구비되어있던, 언어를 만들어 내는 기관.
그 기관이 발하는 덕후의 징조.
"뇌에 각인된 언어 형태 중에 덕후를 나타내는 문법이 숨겨져 있다면 문화적으로 불안정한 한국의 인터넷을 분석하는 것으로 덕후의 발생을 예측할 수 있지.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은 그렇게 생각했어."
----
"4chan /jp/의 양키들의 회화속에도 이런 구조가 섞여있었으니까. 단 이런 문법에 의한 말을 오래 듣고 있던 한국인의 뇌에는 어떤 종류의 변화가 발생하지. 어떤 가치판단에 관한 뇌기능이 억제되는 거야. 그게 이른바 '애국심'이라는 것을 비틀어 놓지. 특정한 경향으로 말이야."
----
"...일빠가 먼저인가, 덕후가 먼저인가."
존 폴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거다."
----
"일빠와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것은 달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내게는 그렇게 이야기할 자신이 없는데." 존 폴은 고개를 가로저은 뒤, "윤서인은 '동경의 좁은 라면집에서 라면이랑 생맥주, 교자만두 시켜놓고 야구중계를 보고있으면 캬~그 기분! 일본사람이 된듯!'이라고 한적이 있지. 문화는 마음을 강간한다. 국가나 민족 같은 것은 그 위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쓸모없는 귀족 같은 거야. 모에는 의미를 가로지를 수 있어."
----
"넌 미쳤어."
나는 존 폴이 제 정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극장판 상영회에서 무슨일이 있었는가.
사실 발단은 영화관 매너위반에 대한 규탄이라기보다 SNS 과몰입(트위터 중독?)에 대한 디스-자학도 섞인-였는데 상영중인지 상영전인지 사실확인없이 상영중 핸드폰 불빛을 켜는 진상으로 몰아 확대전파되는 바람에 나중에 정말로 있었던 진상 목격담에 집중되지 못한 느낌이...
전반부 팝콘소동은 현장보고는 몇 없는데 트위터상에서의 반향이 더 컸고(상영시작 전 일어난 첫 해프닝인데다가, 상영이 시작되면서 현장의 트위터 접근이 차단됨), 상영 종료후 큐베남. 2인조 실황 등에 대한 피해보고가 다수 올라오면서 블로고스피어에 전파, 관객들 귀가 후 색출작업(...)이 시작.
-
전반부 팝콘소동은 현장보고는 몇 없는데 트위터상에서의 반향이 더 컸고(상영시작 전 일어난 첫 해프닝인데다가, 상영이 시작되면서 현장의 트위터 접근이 차단됨), 상영 종료후 큐베남. 2인조 실황 등에 대한 피해보고가 다수 올라오면서 블로고스피어에 전파, 관객들 귀가 후 색출작업(...)이 시작.
-
2012년 8월 29일 수요일
가짜 오디션 후 선전부장에 임명했을때 성우들의 반응.
스기타 토모카즈
거기 있는 전원의 얼굴을 기억하고 돌아간다.
고토 유코
관계자의 멱살을 잡는다.
이토 시즈카
술을 마시고 니킥을 날린다.
코시미즈 아미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절대로다.
유카나
극장판에서 다른 사람의 배역을 빼앗아 출연한다.
토요사키 아키, 토마츠 하루카, 고토부키 미나코, 타카가키 아야히
스피어 명의로 주제가를 부른다.
코바야시 유우
선전부장에 임명될리가 없다.
우에다 카나
이벤트 기획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한다.
사와시로 미유키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반말을 깐다.
스즈키 타츠히사
"돈은 어떻게 되는거야!"라며 패닉을 일으킨다.
다나카 리에
"잠깐...스테프! 스테프!!"
히카사 요코
관계자석에서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있는 나카무라 에리코를 발견하고 달려든다.
시라이시 미노루
훌륭하게 선전부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모두 행복해한다.
이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구만...
거기 있는 전원의 얼굴을 기억하고 돌아간다.
고토 유코
관계자의 멱살을 잡는다.
이토 시즈카
술을 마시고 니킥을 날린다.
코시미즈 아미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절대로다.
유카나
극장판에서 다른 사람의 배역을 빼앗아 출연한다.
토요사키 아키, 토마츠 하루카, 고토부키 미나코, 타카가키 아야히
스피어 명의로 주제가를 부른다.
코바야시 유우
선전부장에 임명될리가 없다.
우에다 카나
이벤트 기획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한다.
사와시로 미유키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반말을 깐다.
스즈키 타츠히사
"돈은 어떻게 되는거야!"라며 패닉을 일으킨다.
다나카 리에
"잠깐...스테프! 스테프!!"
히카사 요코
관계자석에서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있는 나카무라 에리코를 발견하고 달려든다.
시라이시 미노루
훌륭하게 선전부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모두 행복해한다.
이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구만...
2012년 4월 13일 금요일
언덕길의 아폴론 1화 등장 커버아트
이런건 2ch나 4chan의 검증반이 알아서 해줘야하는데 별 흥미들이 없는거 같아서... 내공이 부족해서 놓친게 많은데 타이틀을 바꿔놓은것도 있는거 같고...
Monk's Music - Thelonious Monk (1957)
Somethin's Else - Canonball Adderley (1958)
아니 근데 배경은 아무리 봐도 ELSO로 보이는데...;
Bags Groove - Miles Davis (1957)
Four & More - Miles Davis (1966)
작품설명에는 배경이 60년대라고만 나와있는데 이 앨범의 출시년도인 1966년은 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뭐 별로 중요한건 아니다만.
Maiden Voyage - Herbie Hancock (1965)
Saxophone Colossus - Sonny Rollins (1956)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 - Bill Evans Trio (1961)
Kind of Blue - Miles Davis (1959)
아니 그러니까 왜 ELSO 냐고... 앞쪽은 재즈음반이 아니라서인지 못찾긴 했는데 실존하는 음반인지도 의심이 된다. 살짝 스펠링을 바꿔놓은거 같기도 하고.
Moanin' - Art Blakey and the Jazz Messengers (1958)
참고로 Moanin'은 1화의 타이틀이기도.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mp4_20120413_204911.989.jpg)

.mp4_20120413_204938.884.jpg)
.jpg)





.mp4_20120413_205014.655.jpg)

.mp4_20120413_211701.699.jpg)
.mp4_20120413_211708.51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