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에 대해서' 오시이 마모루 1995년
저기, 조금 말해도 괜찮을까?
이 영화는, 무엇하나 구원이 없는 영화다.
실제로, 현실에선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을 마음껏 자세한곳까지
꺼려지는 현실적인 일상의 세계로서 그리는건, 반칙이외의 무엇도 아니다.
(중략)
그리고 본 사람은 커다란 착각을 한다.
'이것이 본래 현실의 세계가 아닌가'라고...
거기에 그려진것은 무엇인가 하고.
고등학교도 가지않고 유학해서 바이올린장인을 목표로하는 남자친구?
부모도 선생도 동급생도 누구하나 반대하지 않고 벽에도 부딫치지 않고 꿈을 노리는 그녀?
그 두명에 의해, 당연한듯 그려져있는 있을수없는 연애의 세계?
'좋네, 이런 학창시절'
'이게 원래 있어야할 학창시절이었어'
'그렇다면 나의 학창시절은 무엇이었나'
그렇게 본것중에서 원래는'있을수 없는 현실의 세계'가 정당화되고
종래의 '당연히 있던 현실의 세계'가 부정당한다.
본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것을 마치 가지고 있었던것처럼 착각시켜 그것을 부정하게한다.
이런 잔혹한 작품은 없다.
'현실을 착각시킨다'란건 애초에 악이고, '현실을 부정하게 한다'는 더욱 악이다.
'대학의 강연 ('귀를 기울이면'를 인용한 이야기)' 오시이 마모루 1999년
'이런 예를 드는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귀를 기울이면'에 나오는 건전한 가족을 보고
과연 애니메이션을 필요로하는 지금의 젊은 아이들이 기운을 내는 일이 있는것인가.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귀를 기울이면'을 보고 삶의 희망이 생기거나 기운을 차리는 아이는
애초에 애니메이션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애니든 영화든 소설이든 뭐든 그렇지만 픽션을 보통 이상에 빠져드는 아이들에게는
저런 형태로 이상이나 정열을 말해져도 오히려 압박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을거다. 나는 그런건 만들지 않는다.
이번도 그렇고 내가 만드는것에 있는것은, 사는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괴롭다.
아마 여러분을 둘러싼 현실도, 앞으로의 인생도 분명 괴로울게 틀림없다.
살아있으면 무언가를 얻을꺼라고 젊은 사람들은 막연히 생각하고 있겠지만,
실제로는 잃어가는 과정이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