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일 화요일

덕후기관

----

  "하지만 덕후라도 쓰는 언어는 주변사람들이 쓰는 언어와 같지 않나? 갓난아기는 일본어를 뇌에 각인시킨 채 태어나는게 아니야. 그것이야말로 언어가 후천적인 학습의 결과라는 증거 아닌가?"

  "옛날 인터넷이 없던 PC통신 시절, 시삽은 회원들이 사용하는 말 따위에 신경쓰지 않았어. ANC, 만사, 애니메이트, 각지에 모여든, 사는 지역도 연령대도 다른 회원들은 처음에는 평범한 통신체로 이야기하게 됐지. 하지만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어. 얼마 안가 회원들은 업로더들이 올려주는 일본 애니와 애니송을 듣고 조금씩 글을 쓰게됐지. 제대로 된 어학교재로 배운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다쟈레같은 문학적 기교를 구사해가며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했어. 그 제1세대의 언어를 덕후체라고 한다능."

  존 폴은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뒤,

  "덕후체를 모국어로 자라난 덕후가 마찬가지로 덕후체를 모국어로 자라난 다른 덕후들과 접촉했을때, 이전까지의 경직된 덕후체에는 없었던 보다 과감하고 오그라드는 문법이 태어났다. 고정닉들이 차마 쪽팔려서 사용하지 않던 문법을 뉴비들이 만들어낸거지. 그것은 일본어를 기본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원본을 직접 들으며 성장한 원어민들의 말과는 틀려. 서툰 일본어로 하는 부자연스러운 대화를 들으며 자란 세대가 새로이 창출해낸 말이다. 소레오 한본어라고 유우.

  카레라가 올드덕후의 언어가 가지고 있지 않던 무즈까시 문법을 창출해낸 것은 뇌가 소노나까니 미리 가지고 있던 요소를 조합해 문장오 츠쿠르 구조를 못테잇타카라다."

  "그 선천적인 국어파괴기능이 덕후문법이라는 건가?"

  "유전자니 각인사레테이루 기능이다. 언어오 츠쿠르 기관이지."

  뇌 안에 미리 구비되어있던, 언어를 만들어 내는 기관.
  그 기관이 발하는 덕후의 징조.

  "뇌에 각인된 언어 형태 중에 덕후를 나타내는 문법이 숨겨져 있다면 문화적으로 불안정한 한국의 인터넷을 분석하는 것으로 덕후의 발생을 예측할 수 있지.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은 그렇게 생각했어."

----

  "4chan /jp/의 양키들의 회화속에도 이런 구조가 섞여있었으니까. 단 이런 문법에 의한 말을 오래 듣고 있던 한국인의 뇌에는 어떤 종류의 변화가 발생하지. 어떤 가치판단에 관한 뇌기능이 억제되는 거야. 그게 이른바 '애국심'이라는 것을 비틀어 놓지. 특정한 경향으로 말이야."

----

  "...일빠가 먼저인가, 덕후가 먼저인가."

  존 폴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거다."

----

  "일빠와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것은 달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내게는 그렇게 이야기할 자신이 없는데." 존 폴은 고개를 가로저은 뒤, "윤서인은 '동경의 좁은 라면집에서 라면이랑 생맥주, 교자만두 시켜놓고 야구중계를 보고있으면 캬~그 기분! 일본사람이 된듯!'이라고 한적이 있지. 문화는 마음을 강간한다. 국가나 민족 같은 것은 그 위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쓸모없는 귀족 같은 거야. 모에는 의미를 가로지를 수 있어."

----

  "넌 미쳤어."

  나는 존 폴이 제 정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